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叱咤中原大陸的騎馬民族 至今還在沸騰的nomad的血
2011/01/09 02:25:43瀏覽503|回應0|推薦3
<한국인의 DNA를 찾아서>대륙 호령한 기마민족…‘노마드의 피’는 지금 더 뜨겁다
叱咤中原大陸的騎馬民族 至今還在沸騰的nomad的血

고조선 가림토 문자, 한글과 비슷
古朝鮮加臨土文字與韓字相似

알파벳보다 1000년 빨라
比英文字母早1000年

안착 않고 여러문명 접촉
不安於一地頻繁與其他文明接觸

대처능력·일사분란함 배양
培養出臨危不亂的優秀危機處理能力

지난 2004년 여름, 중국 발해만 연안과 네이멍구(內蒙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한국, 중국, 러시아 사학계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주로 한반도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던 빗살무늬토기가 중국 내륙 깊숙한 곳과 한반도 북쪽 한참 떨어진 곳에 발견됐다. 한민족이 동북대륙을 지배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2004年 在中國渤海灣沿岸與內蒙古,俄羅斯沿海州一代,發生一件震驚韓國,中國,俄羅斯史學界的考古事件,那就是本來廣泛的分布在朝鮮半島的櫛文土器,在中國內陸深處與離朝鮮半島北部遠處發掘,這一瞬間證明了韓民族曾經統治過東北大陸的事實

시베리아에서 몽골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중국 측 학설이 폐기되는 상황이었다. 제작시기가 최고 기원전 6000년까지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가 중국학계가 주장하던 기존 루트의 한 중간 경로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이 ‘시조마을’ 또는 ‘중화 제1촌’이라 자랑하는 창하이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됐다. 한민족의 활동무대인 랴오시(遼西)와 랴오둥(遼東)과 맞닿은 지점이다.

這意味著過去經西伯利亞至蒙古到朝鮮半島的文化傳播的中國方面堅持的理論瞬間被粉碎的一刻,因為經過鑑定製造時機最早可追溯到西元前六千年,史上最古老的櫛文土器, 就是出現在中國過去一貫主張的文化傳播路徑的中間地點,連中國自稱的始祖村落,中華第一村的長海縣,也發掘出櫛文土器, 這表示韓民族的活動舞台曾經達到遼西與遼東附近

중국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한국이 6ㆍ25 전후복구로 정신없을 1955년 중국 랴오허(遼河) 일대에서 발견된 홍산문화(紅山文化)였다. 이 지역은 상고사에서 한민족의 활동무대이다. 중국은 만리장성 이남은 선진문화로, 성 이북을 후진문화로 보고 역사를 기술해왔지만, 홍산유적 발굴결과, 기원전 3500~3000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검이 발견된 것이다. 중원이 신석기시대를 벗지 못하던 시기다. 특히 이곳에서는 여러 나라 사학계가 ‘한민족의 것’으로 의견일치를 본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됐다. 한민족의 활동무대는 중국 정부와 사학계가 틀어막기에 너무도 크고 넓었으며, 사료로서 입증되고 만 것이다. 국제 사학계에서도 한민족의 문명이 세계 최고(最古)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나온 계기이기도 했다.
最刺激中國的一個考古事件就是1955年在中國的遼河一代發掘的紅山文化一事,在該地區是上古時代韓民族活躍的舞台,中國一貫的主張認為萬里長城以南是先進文明,長城以北市落後的野蠻人文化.但是在紅山文化的發掘結果,發掘出製造年代估計在西元前3500-3000年之間的青銅劍,這時間點剛好是中原國家尚未脫離新石器時代,特別是在此處大量出土各國史學界共認的 屬於韓民族的櫛文土器,積石塚,支石墓, dolmen,琵琶形銅劍 ,多紐細紋鏡等

韓民族廣泛的活動舞台讓中國政府與中國史學界圍堵工作的實在做不起來,不僅是在史料上證明韓國的上古史,同時也讓國際史學界小心的提出韓民族的文明有可能是世界上最古老的文明的契機

넓디넓은 활동무대에서 이동수단은 말(馬)이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부르는 이유다.
廣泛的活動舞台必須的移動工具 馬 = 韓民族被稱為其馬民族的由來

한국의 역사를 두만강, 백두산 이남으로 가둬버리려는 식민사관 학자의 주장을 배제한 상태에서 역사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한민족의 발원지는 대체로 ▷바이칼호로 보는 견해 ▷황하 남쪽의 화족과 대립했던 강 북쪽의 동이족으로 보는 견해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천산산맥, 또는 알타이 산맥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나뉜다. 어느 학설이 정설이라 할 수 없으나 대체로 말을 타고 목축을 하는 유목민이며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는 황하 이북 지역을 활동무대로 삼았을 것이라는 점은 일치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민족이라고 했던 여진은 ‘고려’와 발해의 별칭인 ‘진국’의 합성어이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초기 나라이름을 ‘金’으로 정한 이유가 ‘김의 나라’ 즉 한민족이라는 뜻을 담았다는 학설도 있다.
排除企圖把韓國的歷史限制在圖們江,長白山以南的殖民史觀學者的主張, 綜合各家歷史學家的意見,韓民族的起源大體上可分為
1. 貝加爾湖起源說
2. 與黃河以南的華夏族對峙的黃河以北東夷族起源說
3. 吉爾吉斯坦 到中國的天山山脈,或是阿爾泰起源說
雖然目前尚無定論,但是大體上對於一個騎馬游牧的民族,從歐亞大陸到朝鮮半島,包含黃河以北作為活動區域,是大家共同認定的,丹齋 申采浩, 1880-1936主張 認為與韓民族同一系的 女真,其名稱其實來自於高麗與渤海國的另外一個稱呼"真國"的合成語, 清太祖 努爾哈赤初期定國號為"金"的原因是代表者 金氏之國,也就是意味的韓民族所述力的國家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영토로 하고 수많은 거수국(제후국 연방) 체제였다”고 분석했다.
檀國大學名譽教授윤내현認為 "古朝鮮的領土包含今日的朝鮮半飽與整個滿州區域,並且轄下有數個諸侯國"

‘광개토(廣開土)’라는 임금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광역 영토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제후국 간의 문화접변과 새로운 문화유산의 창출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거수국이 통일된 표기를 하기 위한 노력도 나타난다. 오늘날 한글을 쏙 빼닮은 ‘가림토’문자의 창제이다. 조선 세종조 집현전 학사인 최만리도 “한글은 옛글자를 본뜻 것”이라고 했다. 페니키아의 알파벳보다 무려 1000년 빠르다. 말(馬)을 통한 ‘빠른 교통’ 못지않게 수많은 제후국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절실했고, 그만큼 새 문물의 탄생은 빨랐던 것이다.
廣開土的名號意味著管理著廣闊的土地,並且與諸侯國之間進行文化交流,創造出蓬勃的新文化,並且努力於讓諸侯國之間使用共同的符號,最具代表性的就是與在今天跟韓國字很像的加臨土文字. 在朝鮮世宗朝集賢殿學者崔萬里認為"韓國字仿於古字體",這比Phoenicia)的字母提早1000年出現,除了"馬"這種快速移動的交通工具之外堪稱統一諸侯國之間的最佳工具

아울러 안착하지 않고 여러 문명을 접하면서 얻은 지식의 축적 및 응용력,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대처능력, 일사불란한 노마드(nomadㆍ유목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응집력 등이 배양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同時不安於現狀,善用累積的知識與良好的應用能力,對於意外事件的良好危機處理能力,培養出維持井然有序的遊牧民族序列的強烈凝聚力等

사학자들을 만나면서 한때 한국인의 DNA를 탐구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여러 역사서와 사학자들을 접해본 결과, 한민족에는 기마유목 민족의 DNA가 잠재돼 있다”면서 “신속한 목표추구에 따른 경쟁친화적 문화, 강한 성취동기, 대외지향성 등을 코리안 DNA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過去跟眾多史學家接觸 研究韓國人基因的김석동 金融委員長認為"綜觀各國歷史文獻與史學家的研究,韓民族的體內具有遊牧民族的基因, 對於迅速的追求目標,快速執行的競爭文化,強烈的動機等 都可作為韓國人基因最佳詮釋."
( 知識學習其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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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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